[메디칼럼] 외과의사 태부족, 돌파구가 안 보인다 /황성환
부산항운병원

며칠 전 저명한 의학 잡지가 미국 사회에 닥친 외과의사 부족 현상에 대해 다뤘다. 원만하게 수술을 소화해 내기 위한 적정 외과의사 수를 인구 10만 명당 7.5명으로 산정하지만 2050년이 되면 미국 전역에 7000여 명의 외과의사가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외과를 지원하게 되더라도 분과 전문을 선택하고 리스크가 높은 외과의사의 생활은 기피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좀 더 걱정된다. 병원에서 외과의사가 슬금슬금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 외과의사 수는 2017년 5700여 명이고 이 중 65세 이상 외과의사가 1062명이다. 많은 외과의사가 수술을 단념하고 개원의 길을 걷거나 전공을 변경하고 있다. 한 해에 150여 명의 외과의사가 배출되지만 자연 감소하는 숫자는 250명을 넘어선다.

발전적 변화를 위해 외과 수련 기간을 3년으로 줄여달라는 외과학회의 청원이 있었다. 그러나 전공의를 수술을 배우고 공부하는 의사가 아닌 값싼 일꾼 정도로 생각하는 병원협회에서 이를 반대했다. 일손이 부족한 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없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정부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여 수년째 교육제도의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외과 수련 과정을 마치게 되면 일반외과의사의 길을 걷게 되거나 입원전담 전문의 혹은 분과전문의사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1, 2차 병원에 외과전문의가 있어야 3차 병원으로 환자 쏠림현상을 막고 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1, 2차 병원을 책임질 외과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의료전달체계는 30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약 2년 전 시작한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는 성과 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서울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30년간 같은 논의를 해왔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어느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가 리더십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며 의사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얼마 전 봉침을 맞은 환자가 쇼크에 빠져 사경을 헤매자 근처에 있던 가정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살리려고 끼어들었다가 환자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였다. 선의로 도와주려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이쯤 되니 걸핏하면 분쟁에 휩쓸리는 외과의사의 길은 더더욱 후배들에 권유하기도 어렵게 생겼다.

외과의사 숫자는 인구의 자연 증가로 인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기대여명이 늘어났고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노인들은 생명을 위협받거나 응급을 요하는 외과 질환에 노출될 빈도가 더 높다. 외과수술의 리스크는 앞으로 점점 높아질 것이다. 1, 2차 병원 외과의사는 리스크 높은 환자와 불편한 관계에 빠지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고 3차병원 외과에는 밤낮으로 환자가 몰리게 될 것이다.


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들도 궁극적으로는 유방이나 갑상선 혹은 항문외과, 혈관외과나 이식외과 등 리스크 해소나 미래 수익이 보장되는 분과 전문의 길을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외과분야의 분과를 통한 양질의 수준 높은 전문적 의료서비스의 제공은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학문적 측면에서 의학의 세분화 및 전문화가 필요하고 의료기술의 첨단화를 통해 국민에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해야 함은 틀림없다.

지금 병원에는 여전히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외과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제 시간이 너무 늦어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할 제도적 뒷받침 마련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현장을 지키는 외과의사는 자기희생이나 사명감, 성취감, 창의력과 같은 추상적인 수사들을 덕목으로 되뇌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마지막 버티기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잃어버린 10년’이 될까봐 깊은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갑갑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부산항운병원 병원장


국제신문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80917.22025005825